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직봉전쟁 (문단 편집) === 직봉의 대치 === 장쭤린이 제출한 요구는 매우 무리한 것으로 장쭤린 스스로도 직계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으로 여겨 오히려 전쟁의 명분을 찾고하 했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거나 조예의 보고를 받은 차오쿤은 열강의 지지를 바탕으로 시간을 끄는 한편 조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4월 3일, 우페이푸가 자신의 49세 생일잔치를 명분으로 11개 성 대소군벌 500명을 뤄양으로 초청, 봉군 토벌에 대해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봉천군에 끝까지 대항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결집했다. 잔치에 참석했던 조예는 원래 우페이푸를 바오딩으로 초청하여 차오쿤으로 하여금 그를 진정시켜 보고자 하는 심산이었으나 참석자들의 모습을 보고 직계 내부의 주전론이 강성하여 전쟁이 피할 길이 없음을 느끼고 포기하게 되었다. 우페이푸는 3사단을 의창 북쪽으로 이동하게 하는 한편 왕승빈의 23사단을 바오딩으로, 장복래의 24사단을 정저우로 가게 하고 소요남의 25사단을 호북으로, 펑위샹의 11사단을 뤄양으로 파견했다. 그리고 각 부대로 하여금 경한선의 차량을 징발하고 부대를 장신점, 바오딩, 스좌장, 정저우에 포진시켰으며 경한선 철로 수입 328만원을 압수하여 군비를 충당했다. 이에 맞서 봉군도 전쟁 준비에 돌입, 4월 10일 봉군이 관내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장쭤린은 군량성에 대본영을 설치하고 부대를 마광, 정해, 덕주에 배치시켰다. 그리고 봉군을 진위군으로 개칭하고 스스로 진위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였으며 손열신을 부사령관에, [[양위팅]]을 참모장에 왕수상을 참모처장에 임명했다. 그리고 전선 지휘부를 하북 중주회관에 설치하여 부대를 두개로 갈라 하나는 진포선을 따라 쉬저우로 진군시켜 장문생의 신안무군과 합류, 하남으로 진격한다는 계획을 꾸몄다. 장쭤린은 "직례와 봉천은 원래 한 가족이었다. 북양군벌이 갈라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라고 하면서 톈진의 봉천군에게 조씨 가문의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지시하는 등 차오쿤에게는 원한이 없음을 드러내며 전쟁을 바라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조예는 봉군이 들이닥치기 전에 저항을 포기하고 직례성장 공관의 문서를 가지고 철수했고 경찰청장 양이덕을 대리성장에 임명, 톈진의 모든 직계군을 바오딩으로 철수하게 했다. 또한 덕주의 26사단장이자 차오쿤의 7번째 동생 조영 역시 덕주로 봉군이 접근하자 작우용을 대리 사단장으로 임명하고 도주했다. 차오쿤 역시 명령을 내려 진포선의 모든 직군에게 봉군에게 저항하지 말라고 명령했으며 모든 병영과 덕주의 병공창을 봉군에게 넘겨주게 했고 자신의 식구들을 한커우로 철수시켰다. 차오쿤의 유화적인 모습에 4월 19일, 장쭤린이 "통일의 기약이 없으면 나라가 영원히 평안할 날이 없다. 눈앞에 놓인 장애를 제거하지 않으면 통일은 영원히 기약할 수 없다. 군대를 이끌고 와서 입관 주둔하여 무력통일을 기도하고자 한다. (...) [[우페이푸|백성에게 해를 끼치고 나라를 병들게 하는 자]]가 있다. 사사로이 당을 짓고 정치와 기강을 문란케 하고 국고를 도둑질하여 평화와 통일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즉시 몰아내야 한다. 민중화 마께 내쳐야 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통전을 보내 평화통일회의 소집을 제안했다. 또한 최후 건의서라는 명목의 전보를 보내 "통일의 진행에 있어서 공개회의를 하여 제도를 확정짓는 것은 어떠한가. 전국의 지도자와 덕망있는 분들이 공동으로 정치를 하도록 해야 한다. 쭤린은 함부로 하찮은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라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우페이푸는 지지 않고 4월 19일 장쭤린 비방 전문을 보냈다. ||근래 중앙의 정국은 장쭤린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왔다. 우페이푸는 간섭을 하지 않았으며 차오쿤 역시 자기 주장을 못해 왔다. 이번에 량스이는 장쭤린의 뒤를 믿고 외국에 아첨하여 나라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뒤를 봐주는 자를 위해 인민이 바라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것 같다. 또 인민에게 해를 끼치는 좀벌레를 비호하고 있고 마구 무력으로 인민을 위협하고 있다. 자신들만을 위하고 인민은 돼지 새끼로 보고 있다. 3000만 직례인과 전국 4억 인민의 청원을 우페이푸가 대표하고 싶다.|| 4월 20일, 장쭤린은 쉬스창에게 전보를 보내 전국 통일회의 소집을 요청하는 한편 반대하는 자에게는 무력을 쓰겠다고 위협했다. 이쯤되자 차오쿤 역시 무력해결만이 답으로 여겨 우페이푸에게 지지를 표명하는 전보를 쳤다. ||[[우페이푸|당신]]이 바로 [[차오쿤|나]]이고 [[차오쿤|내]]가 바로 [[우페이푸|당신]]이다. 우리는 친척보다 가까웠다. 당신이 어찌할 것이냐 함은 내가 어찌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